이건희 사망 별세 및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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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사망 별세 및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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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7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는 소식이네요. 삼성그룹을 세계 일류기업으로 만든 장본인으로 2014년 5월 10일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 증세로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응급실에 오자마자 심장마비가 와서 심폐소생술로 소생해 지금까지 치료를 이어왔었습니다. 6년 만에 삼성은 사망 소식을 알렸다. "고인와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는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라고 밝힘.

 

 

 

 

삼성 글로벌기업으로 키워

 

이건희 회장은 1987년 삼성그룹 경영승계 이후 2014년 입원 전까지 약 27년 동안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삼성을 글로벌 탑기업으로 만든 그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의의 삼성을 만들자" 등의 수많은 어록을 남겼었다.

 

 

 

 

삼성은 반도체, 스마트폰, TV, 가전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음. 멀게만 보였던 TV 시장에서 숙적 일본 소니를 제치고 역사적인 1위를 차지했고 또 애플을 따라잡아 핸드폰 시장도 1위를 달성하는 쾌거를 달성함. 메모리 반도체를 포함 무려 20여 개 품목의 글로벌 1위를 일궈냈다. 실제로 이 회장이 경영을 맡은 27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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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의 매출은 40배, 시가총액은 300배 이상 커졌다 하니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여러 수사로 홍역을 치르기도 함.

 

삼성비자금으로 특검 조사도 받아 어려움 겪어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의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특검 조사를 받아야 했고, 특검팀에 의해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되자 2008년 퇴진과 함께 전략기획실 해체 등을 발표함.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2010년 경영에 복귀한 이 회장은 변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인텔, 모토로라, 노키아, 애플 등 세계 최고의 기업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른 삼성을 "아직 멀었다"라고 다그치기도 함.

 

이건희

 

대구에서 1942년 출생 1977년 고 이병철 선대회장으로부터 후계자가 되어 1979년 삼성물산 부회장에 올라 본격적인 경영 시작함. 1979년 이병철 회장이 죽고 그룹회장에 오름. 그리고 그 유명한 삼성그룹 1993년 독일 푸랑크프르트에서 말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는 `신경영` 선언하여 임직원들에게 강한 경영혁신을 요구함. 이후 삼성은 모든 부분에서 한 단계 뛰어넘는 대도약을 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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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가 삼성이 날개를 달기 시작한 시점이었죠. 삼성그룹 신입사원이나 경력사원 용인 교육들어가면 항상 들었던 내용들이었네요. 또 하나 유명한 사건은 1995년 수원공장에서 직원이 보는 앞에서 품질의 중요성을 강조한 150억 원 상당의 불량 휴대전화를 화형에 처한 일화는 너무나 유명한 얘기임.

 

학력

 

와세다대학 경영학부 졸업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입학후 자퇴

서울사대부고 (홍사덕 전 의원이 동창)

 

출생

 

1942년생(78세)으로 대구가 고향임.

 

부모 형제 관계

 

삼성그룹 창업주 아버지 이병철의 셋째 아들임.

CJ그룹의    첫째형 이맹희

새한그룹의 둘째형 이창희

 

 

 

 

경력

 

2010~2020 삼성그룹 제6대회장

2011~2018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 고문

1996~2017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1987~2008 삼성그룹 제4대 회장

1982~1996 대한레슬링협회 회장

1980 중앙일보 이사

1979 삼성그룹 부회장

1979~1980 동양방송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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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관계


유족은 부인인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 복지재단 이사장이 있다.

 

 

 

 

삼성그룹을 키운 고 이건희 회장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건희 회장의 프로필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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